관광객 지사토씨의 하루-동행취재

"한국은 가깝고 물건값이 싼 나라에요. 어딜 가도 '반값 세일' 중이니까요."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인이 체류하는 호텔이 몰려 있는 서울 명동 일대는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일본어에 이곳이 서울 한복판인지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명동 일대에는 환전소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 지사토 야마세(22·일본 고베) 일행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친구들과 대학 졸업여행을 왔다는 지사토는 "엔고로 저렴해진 여행비 덕분에 큰 부담 없이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전 9시30분. 지사토 일행의 이날 첫 행선지는 서울 창덕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권을 받는 고궁 관리직원은 "니혼고 팜플렛또(일본어 팸플릿)"라며 일본어 책자를 건넸다. 창덕궁 안에는 일본인 150명이 일본어로 돈화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하루 4번씩 일본어로 관광 안내를 하는데 오늘은 첫 타임에 300명이 넘게 몰려 15분전에 한 팀이 먼저 관람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이드 한 명이 1시간20분 동안 150명을 인솔하는 것은 벅차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일본인 관람객이 30% 이상 증가했다"면서 "경복궁이 문 닫는 화요일에는 한 타임에 1000명씩 몰려와 사실상 가이드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20분 점심식사를 위해 을지로로 이동했다. 점심 메뉴는 비빔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지사토 일행이 찾은 곳은 명동이다. 이곳에서 오후 5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여행사들 대부분이 이 시간을 쇼핑할 수 있는 자유시간으로 짜놓았다. 일본인 관광객들의 한국관광의 주요한 목적이 쇼핑이기 때문이다.

낮 1시. 서울 명동거리에는 매장 직원을 제외하고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인이 많았다. 명동입구 밀리오레 백화점에 입점한 옷가게 점원들이 일본말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등 곳곳에서 일본인을 호객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구입하는 물품은 명품백, 안경, 화장품, 고추장·김과 같은 식료품 등이다.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명품관) 등은 일본인들로 북적였다. 명품 가방을 산 이리코(26·여·오사카)는 "2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보다 원화 가치가 절반 정도로 떨어져 부담 없이 쇼핑한다"면서 "일본보다 싸니까 자꾸 손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일본인들은 루이뷔통 같은 명품 핸드백을 많이 찾는다"며 "가방 하나에 1000만원 넘는 것도 ‘싸다’며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이 200%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롯데백화점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91억원어치를 팔아 전년동기 대비 12배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고, 명품관 매출도 일본인이 30% 이상을 차지했다.

안경점에도 많은 일본인이 몰렸다. 이번이 7번째 한국방문이라고 소개한 기무라 게이코(61·일본 도쿄)는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가리키며 "이걸 일본에서 맞추려면 6만엔(약 90만원)을 줘야 하는데 이번에 남대문 시장에 가서 6분의 1 가격인 1만엔 주고 맞췄다"며 "물가가 정말 싸서 언제까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커피전문점에는 쇼핑을 다니다 지친 일본인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기도 했다. 밀리오레 백화점 부근에서는 한국으로 유학온 일본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쇼핑 가이드 팸플릿을 나눠 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본어 통역을 담당하는 이성림씨(28)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BB크림 파는 곳'이고 두 번째가 '맛집'이다"면서 "엔고 때문에 일본 프리터족(필요한 돈을 모을 때까지만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한국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본어로 된 명동 지도가 부족해서 일본인이 길을 물어보면 대부분 직접 데려다준다"면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을 하는데 정말 하루가 모자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반쯤. 쇼핑으로 허기진 일본 관광객들은 불고기로 저녁식사를 한 뒤 8시 정동에서 난타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끝나는 9시30분쯤 정동 일대는 일본인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몰려든 차량으로 교통체증을 빚기도 했다. 지사토는 "유류할증료도 싸고 화장품, 식료품 등이 많게는 일본보다 50%나 저렴하다"며 "마음놓고 쇼핑할 수 있어 한국을 찾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