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잘 싸웠다"는 위로의 목소리 뒤로 한국팀의 마무리 임창용 투수를 책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 하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임창용이 실수였건 의도적이었건 공 한 개를 잘못 던지는 바람에 패배하고 말았다는 투다. 이런 책망의 목소리는 "이치로를 걸러라는 사인을 냈는데, 임창용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김인식 감독의 해명을 언론들이 부풀리고 살을 보태면서 더 거세지고 있다.
조인스닷컴(중알일보 인터넷판)은 <김인식 '이치로 걸르라고 사인했는데 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임창용이 김인식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의 지시 신호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임창용의 항명을 부각시켰다. 동점 상황이라 주자를 내보내 만루를 채운 뒤 다음 타자와 상대하는 것이 야구에서 일반적인 상황이었지만 임창용이 고집스럽게 승부하다가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어 "사인이 잘 안맞은 것인지.. 임창용이 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공에 자신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선수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이유는 모르겠다."는 김 감독의 말을 소개하면서, 김감독의 발언대로라면 임창용이 사인을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벤치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리한 승부를 벌이다 패배를 자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적지않은 파장이 번질 전망이라고 불을 지폈다.
조선닷컴도 임창용 때리기에 가세했다. 조선닷컴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김인식 "임창용에 이치로 피하라고 지시했다" 논란 예상>이란 식으로 뜬금없는 '논란'을 부추기고, 기사를 통해서는 김 감독의 말 대로라면 "임창용이 사인을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벤치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리한 승부를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했다.
동아닷컴은 "임창용(야쿠르트)은 정말 사인을 못 본 것일까. 아니면 자신감이 지나쳤던 걸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승부 가른 임창용의 '사인 미스'> 기사에서, 아웃 카운트 1개만 남겨놓고 1루가 비었기 때문에 만루가 돼도 문제는 없었고, 더구나 임창용은 9회 등판하자마자 이치로에게 2루타를 맞았었는데도, 임창용이 볼카운트 2-2에서 8번째 공도 가운데로 던졌다며 임창용의 잘못된 선택을 나무랐다.
경향신문은 WBC 경기 결과를 전하면서 "공 1개로 졌다"는 말을 4번이나 반복했다. "한국과 일본의 운명을 가른 것은 딱 공 1개"였고, "천추의 한을 남긴 것 또한 딱 공 1개"였으며, "이치로를 한순간에 영웅으로 만들어준 것도 딱 공 1개"였는데,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두고 두고 아쉬운 공 1개였다."고. 그러면서 탄식하듯 "이미 김인식 감독이 '이치로를 걸러라'고 사인을 내지 않았던가"란 넋두리를 덧붙이기도 했다.
국민일보 또한 <김인식 감독 "이치로 거르라고 지시"…임창용의 고집?>이라는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임창용이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고 고집을 피웠다는 쪽으로 몰고 갔다. 방송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MBC는 24일자 <뉴스데스크>에서 "감독의 사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누가 실수를 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단 한 개의 공이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운명을 가르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볼넷을 허용하더라도 이치로보단 다음 타자를 상대하는 게 더 나았는데, 그리고 김인식 감독이 이치로를 걸러라는 사인을 내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임창용이 뜻밖에 정면승부를 택했고 결국 그로 인해 승부가 갈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KBS와 SBS도 <'이치로 걸러라' 아쉬운 사인 미스>(KBS), <"이치로 거르라고 했는데.."···어긋난 사인, 왜?>(SBS)같은 WBC 관련기사들을 통해 김 감독과 임창용의 엇박자를 비중있게 전하면서 "마지막 승부, 마지막 순간에 나온 사인 착각에 메달 색깔이 바뀌고 말았다"(SBS)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결과론에 입각한 "만일.. 했다면"이라는 가정은 하나마나한 소리요,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패배의 분풀이를 어느 특정인에게 전가시켜 희생양으로 삼자는 추악한 마녀사냥 내지는 이지메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짓을 언론들이 나서서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제껏 숱한 시합에서 한국팀의 뒷문을 철벽같이 단속한 임창용이다.
임창용이 감독의 지시를 거스르고 고집을 부려 팀을 패배로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언론들의 추측성 기사일 뿐이다. 지금 가장 확실한 것은 "사인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임창용의 말밖에 없다. 다른 것들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선수 본인의 말조차 제껴두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사실인냥 멋대로 보도해도 되는가?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임창용에게 패배의 책임을 전가시켜 그를 생매장하기?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의 분노가 달래지고 진정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겠지. 그런데 이게 과연 그럴 만한 사안인가? WBC가 패배의 희생양을 만들어야 할 만큼 전국민에게 그렇게 절실한 대회였나?
아다시피 WBC는 미국 내에서도 외면받는 반쪽대회에 불과하다. 미국민은 물론 언론에서도 관심이 없고 심지어 주무대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별 호응이 없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 미국대표팀마저 최상의 올스타멤버를 꾸리지 못해 번번이 나가 떨어지는 판에 무슨 권위를 말할 것인가. 게다가 조직이나 운영도 주먹구구식이고, 일개 나라의 프로야구사무국이 혼자서 주관하고 규칙을 정하면 초청받은 나라는 거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10번의 대진 가운데 특정한 나라와 5번을 붙는 그런 대회를 본 적 있는가? WBC 대회에서 선전한 한국대표팀의 수고를 폄하하고자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졌다고 해서 그 탓이 모두 임창용에게 있다는 듯, 그를 몰아 붙이고 있는 언론이 딱하고 한스러워서 하는 얘기다. 아무리 아쉬워도, 공 한 개로 졌다고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찬스를 살리지 못한 모든 선수, 실수한 선수등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왜 그때 그렇게밖에 못했느냐고, 그 찬스에서 안타를 쳤더라면 이겼을텐데, 네가 치지 못해서 진 거라고... 네가 실수 안했으면 위기를 자초하지 않았을텐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이렇게 하다보면 안 걸릴 사람이 없다. 김인식 감독이라고 예외가 될까. 그래서다.
제 정신을 가진 언론이라면 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잖아도 자신의 실수가 안타까워서 잠 못 이룰 선수에게 이런 식으로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는 안된다. 아무리 잘 해도 완벽이란 없는 것이다. 선수도 인간인 이상, 실수할 수도 있다. 사실 운동의 재미와 감동은 그런 데 있지 않은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처럼, 승리에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이다.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도 모르는가.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가 어찌됐든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결과만을 가지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이빨 까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설레발에 불과하다. 보라! 임창용을 물어뜯는 저런 언론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금 임창용 미니홈피에 그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악플들이 가득하다. 바로 비뚤어진 언론이 낳은 비뚤어진 피조물들 말이다.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잠깐 맡아 보시라.
이 배설물들을 언론들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