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고 싶지 않으십니까? 싫다구요?
이런... 정말 유감이로군요... 그렇다면 이제 그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식민 개척시대에 기독교가 원주민들을 '교화' 했던 방법.)
고대 인도의 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함께 모여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 중 일부가 신관이 없으니 기도의 격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하여 마을에 신관이 초빙되어 함께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관이 데리고 온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기도 시간만 되면 시끄럽게 울어 주민들의 기도를 방해하곤 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기도 시간이 되면 고양이를 멀리 떨어진 곳에다가 묶어 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이번엔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 졌다.
항상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으니 무언가 어색했고, 또한 고양이가 잘 있는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결국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참기로 결정하고 기도 장소에 함께 두었다.
그렇게 고양이를 밖에 묶어 두었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일이 반복되고는 했다.
시간히 흘러 고양이는 늙어죽었다. 신관은 자신의 애완동물의 죽음에 슬퍼하며 마을을 떠나 버렸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당췌 기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신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소문끝에 다른 신관을 데려왔으나, 여전히 부족한 것은 있었다. 바로 고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 찾은 신관을 내보네고 온 나라를 뒤져 고양이를 키우는 신관을 수소문 했다.
천신만고 끝에 조건에 부합하는 신관을 찾아낼 수 있엇고, 마을의 기도는 계속 되었다.
시간이 흘러 고양이는 죽고, 신관은 떠나가며 새로운 신관과 고양이가 마을을 찾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결국 처음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후손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시작한 기도의 전통을 지켰으나, 대체 왜 이 작은 기도모임에 신관이 필요한지, 또한 고양이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단지 예전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중요한 기도의 절차인가 보다라고 이해할 뿐이었다.
결국 그 마을에선 매일 같이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생겼고, 그 전통은 시간이 더 흐름에 따라 신앙과 종교로 바뀌었다. 기도에 참가하는 후손들은 점차 뜻도 모르고 행하던 행동들에 자신들의 생각대로 의미와 기원을 붙여서 기록해 나갔다.
그럼, 여기서 그들의 교리를 적은 책을 잠시 참고해 보자.
"매일 기도를 드릴때마다 반드시 신관이 있어야 한다. 신관은 반드시 고양이를 키워야 하며, 기도를 드리기 전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 먼 곳 나무둥치에 묶어 두었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의식을 행해야 한다.
기도를 올릴 때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 수록 기도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고양이가 수명을 다 하면 고양이를 키우던 신관은 마을을 떠나야 하며, 새로운 신관이 부임하게 되는데, 이 신관 역시 고양이를 키워야만 한다.
기도에 있어서 고양이와 신관의 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제로, 이는 고대 신이 세계를 창조할 적에 고양이가 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은 자신을 섬기는 신과들에게 고양이를 돌보는 의무를 주었고, 이는 신관의 덕목이자 신에 대한 신앙심을 증명하는 행위가 되었다."
================================================================
이것이 바로 종교의 실체다.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에 자기들 마음대로 의미와 설화를 붙이는 행위. 그것이 대를 이어 내려옴에 따라 점점 신성화 되고 종교화 되어 먼 옛날 그 일을 처음 행했던 사람들이 본다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을 행하는 행위.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서 문명이 사라지고 원시화 되어 살아남은 후손들이 비행기의 잔해나 그림을 본다면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 태고적에 신이 기르는 '보잉 747' 라는 거대한 독수리가 있었다. 이 괴조가 날개를 펴면 하늘을 가렸고, 달했고 무게는 산과 같았으며, 울음 소리는 천둥과도 같았다. '보잉 747'이 신으로 부터 부여 받은 임무는 신을 성실히 섬긴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보잉 747'은 천국에 가기에 합당한 사람들을 찾아 삼켜 자신의 몸안에 넣은 뒤 날아올라 천국으로 데려가 토해내었다."
자, 우리는 기원전의 문명인 바빌론과 아틀란티스의 과학 문명이 뇌수술을 자유자재로 하고 도시의 설비는 지금 보다도 뛰어난 기술인 것을 알아내었다. 그럼 그들의 과학문명이 지금의 우리로 하여금 종교를 가지게 한 것을 아닐까?
우리가 아는 '야훼' 라는 신은 사실 수퍼컴퓨터나 전쟁병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언제까지 이런 광기를 좌시해야 하는 것인가.
어린이에게 저런 행동은 사실살 세뇌와 다름이 없다.
비판하려 하는 말도, 비유도 아니다. 저건 진짜 세뇌인 것이다.
평생을 기독교에 미쳐 십일조를 바치는, 목사들의 돈줄이 되는 것이다.
대체...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토할 것 같이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인가?
개신교가 비판을 피하고 싶다면 일단 개신교는 십일조와 헌금 부터 스스로 폐지해야 할 것이다. 목사는 스스로 직장을 가지고 수입을 벌며 목사일은 직업이 아닌 봉사 활동으로 해야 할 것이다. 목사일로, 신의 이름으로는 쌀 한 톨, 십원 한 푼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난 성경 볼 때마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사항이 있다. 예수는 분명 헌금 받을 때 금액을 따지지 않았다. 적게 넣었다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십일조는 분명 스스로 폐지 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예수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십일조를 받았으며 각종 헌금을 받고, 헌금과 십일조를 내지 않거나 액수를 속인 자에게는 죽음까지 내렸다. (교회에서 돈 잘내라 설교할 때 잘쓰는 삽비라 이야기) 성경에는 신벌을 받아 죽었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땅을 팔아 큰 돈을 노린 베드로가 수하를 시켜 삽비라와 그 가족들을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챘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자신을 3번 부정할 것이란 예언을 했지만,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 오히려 유다를 딱하게 여기는 대목은 보인다.
베드로... 연구하고 파해칠수록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다. 자칭 예수의 수제자이자, 자칭 예수의 후계자, 그리고 스스로 오른 초대 교황의 자리.
무서운 권력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베드로의 인물됨으로 볼 때, 다빈치 코드의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본다.
원문주소 바로가기
이런... 정말 유감이로군요... 그렇다면 이제 그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식민 개척시대에 기독교가 원주민들을 '교화' 했던 방법.)
고대 인도의 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함께 모여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 중 일부가 신관이 없으니 기도의 격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하여 마을에 신관이 초빙되어 함께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관이 데리고 온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기도 시간만 되면 시끄럽게 울어 주민들의 기도를 방해하곤 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기도 시간이 되면 고양이를 멀리 떨어진 곳에다가 묶어 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이번엔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 졌다.
항상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으니 무언가 어색했고, 또한 고양이가 잘 있는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결국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참기로 결정하고 기도 장소에 함께 두었다.
그렇게 고양이를 밖에 묶어 두었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일이 반복되고는 했다.
시간히 흘러 고양이는 늙어죽었다. 신관은 자신의 애완동물의 죽음에 슬퍼하며 마을을 떠나 버렸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당췌 기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신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소문끝에 다른 신관을 데려왔으나, 여전히 부족한 것은 있었다. 바로 고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 찾은 신관을 내보네고 온 나라를 뒤져 고양이를 키우는 신관을 수소문 했다.
천신만고 끝에 조건에 부합하는 신관을 찾아낼 수 있엇고, 마을의 기도는 계속 되었다.
시간이 흘러 고양이는 죽고, 신관은 떠나가며 새로운 신관과 고양이가 마을을 찾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결국 처음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후손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시작한 기도의 전통을 지켰으나, 대체 왜 이 작은 기도모임에 신관이 필요한지, 또한 고양이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단지 예전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중요한 기도의 절차인가 보다라고 이해할 뿐이었다.
결국 그 마을에선 매일 같이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생겼고, 그 전통은 시간이 더 흐름에 따라 신앙과 종교로 바뀌었다. 기도에 참가하는 후손들은 점차 뜻도 모르고 행하던 행동들에 자신들의 생각대로 의미와 기원을 붙여서 기록해 나갔다.
그럼, 여기서 그들의 교리를 적은 책을 잠시 참고해 보자.
"매일 기도를 드릴때마다 반드시 신관이 있어야 한다. 신관은 반드시 고양이를 키워야 하며, 기도를 드리기 전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 먼 곳 나무둥치에 묶어 두었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의식을 행해야 한다.
기도를 올릴 때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 수록 기도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고양이가 수명을 다 하면 고양이를 키우던 신관은 마을을 떠나야 하며, 새로운 신관이 부임하게 되는데, 이 신관 역시 고양이를 키워야만 한다.
기도에 있어서 고양이와 신관의 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제로, 이는 고대 신이 세계를 창조할 적에 고양이가 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은 자신을 섬기는 신과들에게 고양이를 돌보는 의무를 주었고, 이는 신관의 덕목이자 신에 대한 신앙심을 증명하는 행위가 되었다."
================================================================
이것이 바로 종교의 실체다.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에 자기들 마음대로 의미와 설화를 붙이는 행위. 그것이 대를 이어 내려옴에 따라 점점 신성화 되고 종교화 되어 먼 옛날 그 일을 처음 행했던 사람들이 본다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을 행하는 행위.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서 문명이 사라지고 원시화 되어 살아남은 후손들이 비행기의 잔해나 그림을 본다면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 태고적에 신이 기르는 '보잉 747' 라는 거대한 독수리가 있었다. 이 괴조가 날개를 펴면 하늘을 가렸고, 달했고 무게는 산과 같았으며, 울음 소리는 천둥과도 같았다. '보잉 747'이 신으로 부터 부여 받은 임무는 신을 성실히 섬긴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보잉 747'은 천국에 가기에 합당한 사람들을 찾아 삼켜 자신의 몸안에 넣은 뒤 날아올라 천국으로 데려가 토해내었다."
자, 우리는 기원전의 문명인 바빌론과 아틀란티스의 과학 문명이 뇌수술을 자유자재로 하고 도시의 설비는 지금 보다도 뛰어난 기술인 것을 알아내었다. 그럼 그들의 과학문명이 지금의 우리로 하여금 종교를 가지게 한 것을 아닐까?
우리가 아는 '야훼' 라는 신은 사실 수퍼컴퓨터나 전쟁병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언제까지 이런 광기를 좌시해야 하는 것인가.
어린이에게 저런 행동은 사실살 세뇌와 다름이 없다.
비판하려 하는 말도, 비유도 아니다. 저건 진짜 세뇌인 것이다.
평생을 기독교에 미쳐 십일조를 바치는, 목사들의 돈줄이 되는 것이다.
대체...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토할 것 같이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인가?
개신교가 비판을 피하고 싶다면 일단 개신교는 십일조와 헌금 부터 스스로 폐지해야 할 것이다. 목사는 스스로 직장을 가지고 수입을 벌며 목사일은 직업이 아닌 봉사 활동으로 해야 할 것이다. 목사일로, 신의 이름으로는 쌀 한 톨, 십원 한 푼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난 성경 볼 때마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사항이 있다. 예수는 분명 헌금 받을 때 금액을 따지지 않았다. 적게 넣었다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십일조는 분명 스스로 폐지 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예수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십일조를 받았으며 각종 헌금을 받고, 헌금과 십일조를 내지 않거나 액수를 속인 자에게는 죽음까지 내렸다. (교회에서 돈 잘내라 설교할 때 잘쓰는 삽비라 이야기) 성경에는 신벌을 받아 죽었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땅을 팔아 큰 돈을 노린 베드로가 수하를 시켜 삽비라와 그 가족들을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챘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자신을 3번 부정할 것이란 예언을 했지만,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 오히려 유다를 딱하게 여기는 대목은 보인다.
베드로... 연구하고 파해칠수록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다. 자칭 예수의 수제자이자, 자칭 예수의 후계자, 그리고 스스로 오른 초대 교황의 자리.
무서운 권력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베드로의 인물됨으로 볼 때, 다빈치 코드의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본다.
원문주소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