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는 꺼 놓기로 했습니다.


전화기가 울릴 때 마다
그럴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혹여 그대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 설레여 하는 내 모습이 싫습니다.
어딜 가든지,
그대가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어린석은 기대로 늘 조마조마해 하며
사소한 기계 따위에 얽매어 버리는게 끔찍 합니다.


잊었던 취미를 되찾았습니다.
팬시점에서 이것저것 새로 산
다이어리와 공책과 필통과 그 외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뭐라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새롭습니다.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동안 소홀함으로 멀어졌던
친구들에게 모조리 연락을 하며
그간 내 무관심에 대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는 동안에 내 곁에는
소중한 사람이 많았다는걸 새삼 깨닫고 다행스러워 합니다.


술을 줄였습니다.
여자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냐는
핀잔에도 꿈쩍도 안하던 내가,
술을 마시지 말아야 겠다는 장한 결심을 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정신이 내 멋대로 풀려버려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그댈 그리워 하고
주책맞은 눈물을 흘러버리는 까닭에,
더 이상의 술은 입에 대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온 동안 처음으로 기특한 생각 한번 한 것 같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면,
그래야 그대를 조금이라도 지우고 살 수 있다면,
그게 공부라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강의실 제일 앞자리에서 별로 친하지 않은
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잠들기전 만화책 한권씩 읽고 잡니다.
꿈속에서 조차 날 아프게 하는 얼굴이 있어
밤새 베겟잇을 적시는 일이 없도록..
잠들기  직전 읽은 만화책의 주인공을
그 얼굴 대신 만나라 수 있도록..
그러나, 가끔 만화속의 주인공 얼굴이
그대 얼굴로 되어있는 황당한 꿈을 꾸기도 합니다.


최대한 바쁘게 살아볼려고 합니다.
새벽부터 수영장을 가고
빡빡한 수업 시간표에 땜에
배우다가 만 포샵도 배워 볼 생각이고
팽개쳐진 싸이도 단장 하고
블로그도 알차게 꾸며 볼 생각입니다.
자격증 시험도 준비해 볼까 합니다.
되든 안되든 결과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난 정신 차릴 수 없도록
다른 생각들 겨를도 없이 바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전화기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것입니다.
10시간이 공짜라고, 본전 뽑기 위해서라며
심심할 때 마다 누르던 번호를
메모리 번지에서도, 내 기억에서도 지울 겁니다.
다 지워 버릴 겁니다.
유난히 숫자에 약한 나,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잊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댈 만난 이후부터 적어오던..
일기가 들어있는 디스켓 한장을 포멧시켰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추억들..
그리고,
내 머리까지 포멧시켜 버릴 순 없지만
우연히 그대를 사랑한 날의
일기를 들여다 보다 그 때의 기분이
또 다시 되살아나 줄이기로 마음 먹었던
술잔을 또 꺼내 들지도 모르고
그렇게 또 다시 그대가 그리워져
그대의 전화번호를 누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의 추억까지, 이젠 지워야 합니다.
깡그리 지워 버려야지요


내 인연의 사람이 아닌 걸..
그리워 한다고 해서 돌아올 사람도 아닌걸..
내 미련이 모두를 힘겹게 만드는데..
이젠 잊어 버려야지요.
새로 시작해야지요.


난 행복해 질겁니다.
꼭 그럴겁니다.
오늘까지만 미친듯이 그리워 하고
오늘까지만 생각할 겁니다.
오늘까지만 울겠습니다.


죽일겁니다..
내 안에 그대, 죽이고 말겁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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