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시장은 팬들의 편식으로 무너진다
동방신기, 원더걸스 등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그룹 시장 독식
대한민국 가요시장은 ‘아이돌 천하(天下)’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차트의 상위권은 대부분 아이돌 그룹들 차지고 음악 관련 방송, 라디오, 온라인사이트 역시 아이돌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형편이다.
멜론, 도시락 등 국내 주요 음원차트는 인기 아이돌 그룹이 도배하다시피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뮤직포털 멜론닷컴의 9월 마지막 주 주간차트에서도 신곡 발표와 동시에 각종 차트를 석권한 원더걸스(2위)와 동방신기(6위)를 필두로 빅뱅(1위, 4위) 샤이니(15위) FT아일랜드(9위) 2PM(8위) 2AM(7위) 등의 아이돌 그룹이 상위권을 대부분 나눠 차지했다.
음반시장 역시 아이돌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상반기만 해도 김동률 유희열 서태지 등 90년대 스타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음반시장은 최근 동방신기가 선주문에서만 33만장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이틀 만에 6만장을 팔아치웠고, 빅뱅 역시 미니앨범이 가뿐히 15만장을 넘어서며 ‘아이돌 파워’를 과시했다. 연말 음반 판매 순위 역시 상반기와는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 가요계 관계자들은 건국 이래 ‘아이돌 파워’가 음악시장에서 이렇게까지 막강했던 적이 없었다며 아이돌 그룹 쏠림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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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듣기 쉬운 음악 일색…안정적 신인배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아이돌, 가요계 필요악인가
1990년대 중반 국내 가요계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H.O.T, 젝스키스, 신화,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 가요계에 샛별처럼 등장한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이뤄진 소위 한국형 ‘아이돌 그룹’의 탄생과 폭발적 인기는 가요계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인형 같은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 등은 10대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요계는 음악 수준의 질적 저하로 신음해야 했다. 당시 아이돌 그룹은 음악성보다 비주얼을 추구했고, 이 때문에 라이브 무대는 립싱크 무대로 변모했다. ‘가수’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노래보다는 퍼포먼스가 우선시됐고, 가요 무대는 아이돌 가수들의 외모와 패션 대결, 춤 대결의 장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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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당시 인기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였던 한 가요계 관계자는 “당시 아이돌 가수는 음악성보다는 노래 외적인 측면에 치중했었다”며 “멤버 개개인의 음악적 실력이 없었다기보다는 사회적 흐름이 음악성보다는 그들의 외형을 강조하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처럼 지금 가요계는 예전과 다르다. 요즘 10대들에게 ‘아이돌=뮤지션’이란 공식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보통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초 트레이닝을 받는다. 데뷔 전까지 음악적 기초 훈련은 기본이고 작곡, 연주, 춤에 외국어 교육까지, 수년간에 걸쳐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이런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고 모두 아이돌 그룹에 합류하는 것도 아니다.
▶대형 기획사들의 아이돌 시장 독식, 악 or 독?
문제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기획.제작.매니지먼트하는 주체가 일부 대형 기획사에 국한돼 있다는 것. 앞서 언급된 아이돌 그룹은 모두 SM, JYP, YG, DSP엔터테인먼트 등 일부 대형 기획사들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아이돌이 가요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 몇몇 대형 기획사의 운영방침대로 국내 대중음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한 30대 가요팬은 “요즘 가요를 듣고 있으면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누가 불러도 다 똑같은 음악 같다”고 가요계를 폄하했다. 다양성 부재가 점점 현실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태규 씨는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은 점점 단순해지고 듣기 쉬운 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가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탁월한데 문제는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다. 조금 더 발전적이고 창의성 있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가요 제작자는 “대형 기획사가 존재함으로써 신인 발굴의 기준이 생기고 더 체계적으로 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형 기획사들이 해외 진출, 한류문화 확산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아이돌 스타의 산실이 된 SM JYP YG 등이 고유의 색깔을 가진 아이돌 그룹들을 내놓으면서 팬층을 넓혀가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신인이 성공하기 힘든 풍토 속에서 이들 기획사가 배출한 신인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신인이 배출됨으로써 침체된 음반, 가요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